최면이란 본래 잠을 의미합니다. 최면에 들면 수면에 빠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200년 전에 자신이 가진 미지의 힘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심리에 영향을 주려 했던 사례가 있습니다. 그는 전자기적인 힘을 이용해서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힘에 대해서 유심히 살펴보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현대의 최면술에서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현재의 최면 유도는 물론 마법의 힘으로 누군가를 조종하는 것은 없지만, 피실험자를 편안한 상태로 만들어서 그의 의지를 편하게 맡기도록 유도한 것일 뿐입니다. 이를 통해 최면에 대한 암시에 따라서 믿음이 생기게 되고, 이로 인한 효과를 가져다준다고 생각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믿느냐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잘 믿지 않는 사람은 최면에 잘 걸리지 않거나 아예 걸리지 않는 사람도 존재한다고 합니다. 전통적인 최면 방법 이외에도 점진적으로 편안한 상태를 만드는 방법이나 자율적으로 훈련하는 방법을 통해서도 사용되기도 합니다.
최면은 수면과 꿈과 같은 의식의 한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최면은 의식 상태와 별개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존재합니다. 최면 연구가 가장 중요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자신을 통제하는 것을 도와준다는 점입니다. 최면과 관련된 실험이 있습니다. 한 연구에는 요가를 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그들의 체온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최면하고 있을 때는 자극의 존재를 느끼는 감각이 없어지며, 기억력이 좋아진다는 보고서가 있습니다. 최면 중에는 고통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결과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최면 연구소에 있는 박사가 보고한 내용입니다.
이를 통해서 의식 심리학은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최면상태에서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면, 고통은 의식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없다는 것인지 하는 의문입니다. 고통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서 자각하지 못하는 것인지, 의식적으로 고통이라는 것을 잊게 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래서 박사는 고통을 이용해서 실험하였습니다. 최면에 걸렸을 때와 걸리지 않았을 때 동일한 고통을 주었는데, 최면 중에는 무의식 관찰자를 이용한 자동으로 글자를 쓰게 만든 것입니다. 최면 중에 고통을 느꼈을 때 아프다는 단어를 쓰게 만든 것입니다. 아무래도 최면 중에는 무의식이 글자를 쓴 것으로 보겠다는 의도겠지요.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의식 중에는 아프지 않다고 말했던 통증이었는데, 최면 중에는 아프다는 글자를 작성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의식을 통해서 조절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건을 보고할 때, 통제력을 통해 참을만한 아픔에 대해서는 아프다고 보고하지 않는 절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최면 유도와 관련해서는 정확하게 밝힐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실험 속의 내용들은 일상생활에서 전혀 겪어보지 못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최면으로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아래의 사례들을 보면 또 헷갈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사실이고 최면과 같은 요법을 일상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게 된다면, 자신의 통제 능력과 무의식으로 인한 자신감 저하, 알지 못할 우울증에도 효과적인 해결책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최면을 통해서 의식을 가지고 있는 상태의 사람들은 정신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1850년대에도 최면 마취의 효과를 연구하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당시에 두 눈으로 최면 마취로 인해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두 눈으로 봤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있던 의사들은 믿을 수 없다고 일관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과학적인 분석 방법의 한계라고도 볼 수 있고, 또 다르게 보면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실제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러한 것은 우리는 잠재성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운동선수는 이 사실을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세계 신기록을 세우는 사례들이 종종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올림픽에서 펜싱 선수가 군중이 할 수 있다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되뇌고, 메달을 땄던 것도 좋은 사례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뇌, 우리의 의식은 생각보다 많은 힘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머리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연구가 존재합니다. 육상 선수를 훈련하면서, 실제로 달리고 있다고 머릿속으로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러자, 그 선수의 심장 박동이 마치 전력 질주를 한 것처럼 올라가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은 우리가 가진 잠재 능력의 몇 퍼센트도 사용하고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최면 치료에 대해서는 많은 사례가 존재하지만, 특히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뇌에서 나오는 엔도르핀으로 인한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또 다른 실험으로는 얼음물 통각 실험입니다. 지각 상태에서 들어갔을 때의 고통의 수치와 최면 상태에서의 고통 수치를 비교한 실험이었습니다. 지각 상태에서는 13 정도의 고통을 적었고, 최면 상태에서는 0을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결과들을 봐도 정확한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말을 하지만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말이 있습니다. 뇌가 뇌를 연구하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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